카너먼과 트버스키는 사람들에게 간단한 문제를 제시하고, 그들이 내놓은 답을 살펴봤어요.
누가 정답을 맞혔는지 뿐만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답이 빗나갔는지에도 주목했죠.
여러 사람이 비슷하게 틀린다면 그 뒤에는 공통된 판단 방식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1) 처음 얻은 값을 기준으로 나머지를 짐작해요
계산할 시간이 부족할 때 사람들이 무엇을 바탕으로 답을 짐작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두 집단의 고등학생들에게 각각 다른 식을 보여줬어요.
답을 짐작할 수 있는 시간은 똑같이 5초씩 주어졌고요.
✔️ 한쪽에는 우리가 본 것처럼 작은 수부터 보여줬어요.
1 × 2 × 3 × 4 × 5 × 6 × 7 × 8
✔️ 다른 쪽에는 큰 수부터.
8 × 7 × 6 × 5 × 4 × 3 × 2 × 1
순서만 뒤집었을 뿐, 들어간 숫자는 같으니 정답도 같겠죠?
그런데 학생들이 내놓은 답은 두 집단이 큰 차이를 보였어요.
연구진은 아주 크거나 작은 답에 영향을 덜 받는 ‘중앙값(답변을 작은 수부터 차례로 놓았을 때
가운데에 해당하는 값)’을 기준으로 두 집단의 답변을 비교했는데,
작은 수부터 본 집단의 중앙값은 512, 큰 수부터 본 집단은 2,250이었어요.
실제 정답은 40,320이고요.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요?
일반적으로, 5초 안에 계산을 끝내긴 쉽지 않잖아요.
일단 앞의 숫자 몇 개를 곱해보고, 나머지는 ‘대충 이 정도 되겠지’ 짐작하죠.
그런데 1×2×3=6이고, 8×7×6=336이에요.
처음부터 머릿속에 놓인 숫자의 크기가 다르죠.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앞부분의 계산 값을 바탕으로 전체 답을 예상하면서도
충분히 큰 값까지는 올려 잡지 못한 것'이 차이가 발생한 원인이라 설명했어요.
내놓은 답은 달라도, 처음 얻은 숫자가 마지막 답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같았던 것이죠.
이처럼, 처음 잡은 값을 기준으로 삼아 답을 조정하는 방식을
‘닻 내림과 조정(Anchoring and Adjustment)’이라고 해요.
배가 닻을 내린 곳에 붙잡히듯, 우리의 추정도 처음 값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어요.
2) 쉽게 떠오르는 것을 더 흔하다고 여겨요
이번에는 단어를 떠올려 볼까요? 영어 문제이지만,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실 필요는 없어요.
다음 중 어느 쪽이 더 많을 것 같으세요?
✔️ K로 시작하는 단어 ✔️ 세 번째 글자가 K인 단어
K로 시작하는 단어는 비교적 쉽게 떠오르죠?
king, kitchen, kind...
반면, 세 번째 글자가 K인 단어를 찾으려면 조금 막막해지지 않나요?
take, make, like...
분명 아는 단어들인데, 막상 찾으려니 생각이 안 났을 거예요.
평소에 세 번째 글자로 단어를 찾아본 적은 별로 없으니까요.
두 사람이 진행한 연구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져요.
K처럼, 영어 단어에서 세 번째 자리에 더 자주 등장하는 자음임에도
사람들은 첫 번째 자리에 오는 경우가 더 많다고 판단하는 경향을 보였죠.
우리가 답해야 하는 질문은 ‘어느 쪽이 실제로 더 많은가?’였어요.
그런데 정확한 개수는 모르니, 아는 단어들을 떠올려 보고는
잘 떠오르는 쪽이 더 많을 것이라고 짐작한 것이에요.
이처럼, 쉽게 떠오르는 정도를 바탕으로 어떤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나는지 판단하는 것을
휴리스틱의 일종인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라고 하는데요.
주변인들이 창업에 실패한 이야기를 연달아 들었다고 해볼게요.
그 뒤 누군가 사업을 시작한다고 하면, 실패한 사람들의 얼굴부터 떠오를 수 있겠죠.
반대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했다면,
‘나도 해볼 만하겠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수 있고요.
물론 그런 이야기도 참고할 만한 좋은 정보예요.
다만 내가 접한 몇몇 사례가 전체의 모습을 얼마나 반영하는지는 따로 살펴봐야 해요.
기억에 잘 남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실제로도 흔한 일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3) 중요한 선택일수록, 판단의 근거를 돌아봐요
두 문제를 푸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답한 게 아니에요.
곱셈에서는 앞부분을 계산해 나머지를 짐작했고
단어 문제에서는 떠오르는 단어들을 바탕으로 어느 쪽이 더 많을지 판단했죠.
주어진 시간과 정보 안에서 나름대로 답을 찾아본 거예요.
이런 방법을 쓰면 끝까지 계산하거나 실제 개수를 확인하지 않아도 빠르게 답을 낼 수 있어요.
답이 틀릴 수도 있지만, 매번 모든 정보를 살피기엔 작은 선택에도 너무 큰 시간과 노력이 들죠.
그러니 결과를 쉽게 바꿀 수 있는 선택이라면,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 있어요.
하지만 큰돈이 걸리거나 되돌리기 어려운 선택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비싼 가구를 살 때, 처음 본 정가보다 많이 할인된 가격을 보면 좋은 가격이라 판단하게 돼요. 다른 매장에서는 같은 제품을 더 싸게 팔고 있을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정가보다 얼마나 저렴한가’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곳보다 저렴한가’를 확인하지 않는 거죠. 이럴 때, 처음 본 가격에 영향을 받은 판단은 실제 금전적 손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판단이 틀렸을 때 어떤 결과가 생길지'를 기준으로,
조금 더 따져볼 선택을 구분해 보면 좋겠습니다.
잘못 고른 점심 메뉴는 한 끼가 아쉬울 뿐이지만
큰돈을 쓰거나 오랫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는 결정은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으니까요.
선택의 영향이 크고 오래 남는 일이라면, 처음 떠오른 답만으로 결정하기 전에 잠깐 멈춰보세요.
‘나는 무엇을 근거로 이 결론을 내렸을까?
그 단서만으로 판단해도 괜찮을까?’
선택의 결과가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에 따라,
판단을 확인하는 데 들일 수고도 달라질 필요가 있습니다.
🤔 그럼 우리는 무언가를 결정할 때, 무엇을 한 번 더 살펴보면 좋을까요?
하나, ‘처음부터 이 숫자를 몰랐어도 같은 판단을 했을까?’ 물어보세요
곱셈 실험에서는 같은 숫자를 보고도, 어떤 순서로 만났느냐에 따라 예상한 답이 달라졌어요.
앞부분에서 얻은 값이 나머지를 짐작하는 기준이 된 거죠.
우리도 무언가를 판단할 때, 이미 주어진 숫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아요.
‘원래 가격’, ‘평균 소요 시간’,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목표’처럼요.
반면, 그 숫자가 왜 기준이 되었는지는 그냥 지나칠 때가 많고요.
이번 주에는 내가 정한 금액이나 시간 하나를 골라,
그 숫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거슬러 올라가 보세요.
예를 들어 마음에 드는 옷에 ‘정가 20만 원, 할인가 9만 원’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다고 해볼게요.
11만 원이나 저렴해졌다니, 그냥 지나치면 손해 보는 기분까지 들 수 있죠.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벌써 돈을 아낀 것 같고요.
그때 '싸네!'라는 생각을 잠깐 붙잡아 보세요. 무엇과 비교해서 싸다고 느낀 걸까요?
다른 매장의 가격인가요, 원래 생각했던 예산인가요, 아니면 바로 옆에 적힌 20만 원인가요?
만약 20만 원과의 차이만 보고 있었다면, 가격표의 정가를 가린 채 다시 생각해 보세요.
‘이 옷이 처음부터 9만 원이었다면, 그래도 살 마음이 들었을까?’
그다음에는 비교할 정보를 직접 찾아보는 거예요.
비슷한 소재와 디자인의 옷은 없는지, 이미 가진 옷과 얼마나 다른지, 실제로 자주 입을 만한지.
할인 전 가격에 집중하느라 놓쳤던 구매 이유를 하나씩 확인하는 거예요.
일정을 정할 때도 같은 질문을 해볼 수 있어요.
누군가 “두 시간이면 되겠죠?”라고 했을 때, 그 말이 없었어도 두 시간으로 예상했을까요?
필요한 준비와 작업을 적어보면, 상대의 숫자에서 생각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어요.
처음 접한 숫자를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워요.
그러니 억지로 잊으려 하기보다는 그 숫자가 내 판단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아차리고,
비교할 기준을 하나 더 마련해 보세요.
분명 내가 내린 판단인데, 그 기준은 다른 사람이 먼저 놓아두었을 수도 있어요.
둘, ‘자주 일어나는 걸까, 기억에 잘 남은 걸까?’ 구분해 보세요
K로 시작하는 단어가 쉽게 떠오르자, 실제로도 더 많을 것처럼 느껴졌죠.
자신을 평가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가령 발표를 무사히 마쳤는데, 말을 잊고 당황했던 한순간이 유난히 선명하다고 해볼게요.
조용해진 회의실과 나를 바라보던 사람들은 생생한데 무난하게 끝낸 말들은 잘 떠오르지 않죠.
다음 발표를 앞두고는 '나는 발표할 때마다 꼭 실수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처럼, 자신을 두고 ‘나는 늘’, ‘나는 원래’, ‘할 때마다’라는 말이 나온다면
그 판단의 근거가 된 경험부터 짚어보세요.
여러 번 반복된 일인가요, 아니면 유난히 기억에 남은 한 번인가요?
일정표나 발표 자료, 당시 받은 피드백처럼 객관적인 기록을 함께 살펴보며 확인해 보세요.
최근에 발표를 몇 번 했고, 실제로 말이 막혔던 때는 언제였는지 세어보는 거예요.
특별한 문제 없이 마친 날도 포함해서요.
이때는 ‘잘했다, 못했다’로 평가하기보다
‘준비한 설명을 마쳤는지’, ‘어느 부분에서 멈췄는지’, ‘질문에 답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세요.
열 번 중 한 번 당황했던 것인지,
같은 부분에서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인지에 따라 준비할 것도 달라지겠죠.
한 번의 실수도 오래 마음에 남을 수 있어요.
다만 ‘그 일이 아직 생생하다’와 ‘나는 늘 그렇게 한다’는 다른 이야기예요.
그 장면에는 담기지 않은 다른 날의 나도 함께 살펴봐 주세요.
이번 주, 혹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다면 결론을 내리기 전에 한 번 물어볼까요?
‘나는 지금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판단하고 있지?’
내 판단이 무엇에 영향을 받는지 알아차리는 경험을 해본 후에는 '클루지'와 함께, 우리 마음이 왜 이렇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려고 해요. 판단에도 버릇이 있다면, 그 버릇이 생긴 이유도 궁금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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