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에서는 이처럼, 매끄럽고 정교하지는 않아도, 실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클루지’라 한다고 말씀드렸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엉성하다’는 점만이 아니에요. 완벽한 장치는 아니었지만 필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해냈다는 점도 함께 봐야 하죠.
마커스는 인간의 마음도 이와 닮았다고 봤어요.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계획하며 많은 일을 해내요. 그러면서도 기억을 잘못 떠올리거나, 충분히 생각했다고 믿으며 한쪽으로 치우친 판단을 하기도 하죠. 많은 일을 잘 해내는 마음이라고 해서, 그 마음이 내놓는 판단까지 언제나 정확한 것은 아니에요.
2) 그 빈틈은 마음이 진화해 온 과정과 관련이 있어요
아폴로 13호의 임시 장치는 우주선에 이미 있는 재료를 조합해 만들어졌어요. 마커스는 우리 마음을 설명할 때도 이미 있던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주목해요.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진화(evolution)'입니다. 진화는 새로운 기능이 필요해질 때마다 몸과 마음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과정이 아니죠. 기존의 구조를 바탕으로 변화가 쌓이는 과정이에요. 마커스는 그 과정에서 새로운 능력이 생겨도, 이전부터 있던 작동 방식이 함께 남을 수 있다고 설명해요. 둘을 같은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있던 것을 활용한다는 공통점에 주목한 거예요.
책에 나오는 '다이어트'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우리는 건강을 생각해 오늘부터 먹는 양을 조절하겠다고 계획하면서도, 좋아하는 초콜릿 디저트가 눈앞에 나타나면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라며 계획을 미루기도 해요. 미래를 생각할 줄 몰라서 계획을 바꾸는 것이 아니에요. 미래를 계획하는 능력이 있어도 당장의 만족을 원하는 마음 또한 여전히 작동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울 때와 막상 선택할 때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는 거예요.
3) 근거를 따질 때도, 이미 가진 믿음에 기울 수 있어요
마커스의 설명을 '판단'의 문제로 가져와 볼게요. 우리는 근거를 따지고 비교할 수 있지만, 동시에 이미 가진 믿음의 영향을 받기도 해요. 그래서 ‘생각해 봤다’는 사실이 ‘여러 가능성을 공정하게 살펴봤다’는 의미는 아니죠.
책은 '사형제도의 효과'에 관한 연구들을 학생들에게 평가하게 한 실험을 소개해요. 참여한 학생들 중에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죠. 각자 자신의 입장이 있는 상태에서 관련 연구들을 읽은 것이에요. 그 결과, 학생들은 자신의 입장과 반대되는 결론을 내놓은 연구에서는 문제점을 잘 찾아냈어요. 그런데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연구에서는, 비슷하게 심각한 문제점도 놓치곤 했고요. 문제점을 찾아낼 능력이 없었던 것이 아니에요.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연구를 읽을 때는 그 능력을 사용했으니까요. 다만 자신이 동의하는 결론 앞에서는 검토가 느슨해진 것이죠.
이 실험에서 눈여겨볼 것은, 연구의 결론이 자신의 생각과 맞는지에 따라 학생들이 다른 잣대를 적용했다는 점이에요. 무언가를 결정할 때 우리는 여러 가지 근거를 살펴봐요. 마음에 드는 선택과 걱정되는 선택의 장단점을 다방면으로 알아보죠. 그런데 이렇게 꼼꼼히 따져봤다고 해서, 모든 선택지를 같은 기준으로 검토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내가 원하는 답을 지지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면서, 다른 답을 지지하는 정보에는 계속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았을까요? 내 생각이 틀렸다고 여기거나, 무조건 결론을 바꾸라는 뜻은 아니에요. 내 생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반대되는 근거만큼 꼼꼼히 따져보자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에 이런 허점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판단할 때 써볼 수 있는 방법도 필요하겠죠?
🤔 내 판단의 허점을 알아도 막상 어떻게 바꿔야 할지는 막막한 우리를 위해
마커스는 『클루지』의 마지막에, 더 나은 판단을 돕는 13가지 방법을 제안해요.
책의 13가지 제안을 구독자님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정리했으니 하나씩 읽으면서 평소 구독자님의 판단 방식과 한번 비교해 보세요. 모두 한꺼번에 실천하려 하기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방법부터 골라보면서요.
1) 다른 가능성도 살펴보세요 우리는 내 생각에 맞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고 맞지 않는 정보는 지나치기 쉬워요.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싶을 때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보여주는 정보는 없는지 찾아보세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이유로 그런 일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까요.
2) 같은 선택을 다른 각도에서도 보세요 같은 상황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근무시간을 줄이는 일은 ‘수입 감소’이면서 ‘개인 시간의 증가’이기도 하죠. 한 가지 표현만 듣고 결정하기 전에, 같은 상황을 다른 말로 표현해 보세요.
3) 함께 일어난다고 원인과 결과는 아니에요 두 현상이 함께 나타나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발생시켰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둘 모두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이 있을 수도 있죠. 한쪽이 다른 쪽의 원인이라고 말하려면, 두 현상이 함께 나타났다는 것 이상의 근거가 필요해요.
4) 몇 개의 사례로 판단했는지 확인하세요 몇 번 비슷한 일을 겪으면, 반복되는 법칙을 발견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적은 사례에서는 '우연'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기도 하죠. 결론을 내리기 전에, 판단의 바탕이 된 경험이나 자료가 얼마나 충분한지 살펴보세요.
5)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세요 우리는 당장의 유혹 앞에서 원래의 계획을 바꾸기도 해요. 배고플 때 장을 보면 계획과 다른 음식을 사기 쉬운 것처럼요. 그 순간의 의지만 믿기보다, 미리 정한 선택을 쉽게 바꾸지 못하도록 준비해두세요.
6) 목표와 함께 행동 계획을 세우세요 목표가 있어도 어떻게 실행할지는 막연할 수 있어요. ‘무엇을 이루겠다’에서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하겠다’까지 정해보세요. 상황과 행동을 연결해두면, 목표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데 도움이 됩니다.
7) 피곤할 때는 중요한 결정을 미루세요 지쳐있거나 다른 일에 정신이 쏠려 있으면 충분히 따져보기 어려워요. 중요한 판단에는 생각할 시간뿐 아니라 집중할 여유도 필요하죠. 가능하다면 휴식을 취하고, 눈앞의 문제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다시 결정해 보세요.
8) 얻는 것과 잃는 것을 함께 보세요 우리는 성향이나 그날의 기분에 따라,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한쪽만 보기도 해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말고 이익과 비용을 함께 따져보세요. 이때, 그 선택에 돈과 시간을 씀으로써 포기하게 되는 다른 기회도 비용에 포함됩니다.
9) 누군가 내 판단을 검토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결정에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면 막연히 '괜찮다'는 느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보를 살피게 됩니다. 왜 이런 결론을 내렸는지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판단 과정을 점검해 보세요.
10) 시간을 두고 미래의 내 입장에서도 보세요 지금 당장 원하는 것이 장기적으로도 중요한 것은 아닐 수 있어요. 미래의 자신은 이 결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보세요. 가능하다면 시간을 두고 다시 살펴보며, 현재와 미래의 관점을 함께 고려하세요.
11) 생생한 이야기 하나에 휩쓸리지 마세요 개인의 강렬한 경험은 많은 자료보다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다는 것과 믿을 만한 근거라는 것은 다르죠. 인상적인 사례에 마음이 기울 때일수록, 폭넓게 수집된 자료들도 함께 살펴보세요.
12) 중요한 선택부터 꼼꼼히 따져보세요 매번 모든 정보를 확인하고 모든 가능성을 검토할 수는 없어요. 사소한 결정에서도 끝없이 따지다 보면 과도한 시간과 노력이 소비되겠죠. 한정된 시간과 노력을, 나에게 중요한 선택부터 꼼꼼히 따지는 데 써보세요.
13) ‘조금 더 따져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세요 판단이 필요한 순간에는 ‘조금 더 따져보자’고 스스로에게 말해보세요. 그리고 앞서 소개한 방법 중 상황에 맞는 것을 적용해 보는 거예요. 다른 이유는 없는지 생각하거나, 잠시 시간을 두고 다시 살펴보는 것처럼요.
13가지 제안을 모두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지금 구독자님에게 필요한 방법부터 하나씩 행동해 보면 됩니다.
저에게 필요했던 건 첫 번째 제안,
다른 가능성도 살펴보는 것’이었어요.
당연하다고 믿었던 진로 외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제 선택도 달라졌거든요. 이제 그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